2023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애니메이션 오오쿠(大奥)는 요시나가 후미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합니다. 남성만 걸리는 역병으로 남자 인구가 급감한 가상의 에도 시대가 배경입니다. 그래서 이 세계에서는 여성이 쇼군이 되고 에도성의 오오쿠에는 여성 쇼군을 섬기는 남성들이 모입니다. 쇼군(将軍)은 일본에서 군사력을 기반으로 실질적인 통치 권한을 행사했던 최고위 무사 정권의 수장을 뜻합니다. 실제 역사에서 오오쿠는 쇼군의 정실과 측실, 여성 시녀들이 살던 공간이었으니, 작품은 그 공간의 주인의 성별을 통째로 반전시킨 셈입니다.
원본이 되는 실제 오오쿠는 어떤 곳이었는지 사료를 따라가며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것과 얼마나 유사한지 또는 다른지 살펴봅니다.

애니메이션 속 오오쿠
넷플릭스는 이 작품을 남성 인구가 거의 사라진 대체 역사 속에서, 자격을 갖춘 남자들이 여성 쇼군의 측실로 성 안에서 봉사하는 이야기로 소개합니다. 원작 소개에 따르면 역병이 처음 퍼진 지 80년 만에 남성 인구가 75% 줄었고, 여성이 쇼군을 포함한 모든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가장 아름다운 남자들은 쇼군의 내실로 보내집니다.
이야기는 액자 구조로 진행됩니다. 8대 쇼군 요시무네가 왜 여성들이 남자의 이름을 이어받는지 궁금해하며, 3대 쇼군 이에미쓰 시절부터 쌓인 오오쿠의 기록을 읽어 내려가고, 그 기록 속에서 오오쿠의 역사가 펼쳐집니다.
실제의 오오쿠는?
실제 오오쿠는 지금의 황거 자리에 있던 에도성, 그 혼마루고텐(本丸御殿)의 깊숙한 곳에 있었습니다. 혼마루고텐은 막부의 공식 의례와 정무를 보던 표(表), 쇼군이 일상생활과 집무를 하던 나카오쿠(中奥), 그리고 쇼군의 가족이 생활하던 오오쿠로 나뉘었습니다. 나카오쿠와 오오쿠는 동선이 구분되어 있었지만, 오스즈로카(御鈴廊下)라는 복도로 이어졌습니다.
오오쿠 안도 하나의 방이 아니라 여러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18세기 에도성 니시노마루 오오쿠 배치도를 보면 쇼군 가족의 공간인 고텐무키(御殿向), 시녀 오쿠조추(奥女中)의 거처인 나가쓰보네무키(長局向), 남성 관리 히로시키(広敷)의 집무 공간인 히로시키무키(広敷向)로 나뉘어 있습니다. 규모를 보면 쇼군에게 직접 소속된 여성만 백수십 명, 정실부인인 미다이도코로(御台所)를 섬기는 여성도 수십 명이었고, 전체를 천 명이라고도, 삼천 명이라고도 한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비밀의 공간
작품과 실제가 가장 닮은 점은 바깥으로부터 감춰진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오오쿠는 쇼군 가문의 사적인 영역이어서 에도 시대 일반 사람들은 그 안을 엿볼 수 없었습니다. 오오쿠는 오랫동안 소설과 연극, 드라마의 소재가 되어왔고, 그 과정에서 상당히 극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졌습니다. 우리가 흔히 오오쿠를 떠올릴 때 화려한 기모노를 입은 여성들과 쇼군을 둘러싼 암투부터 생각하기 쉬운 이유가 이 과정에서 상상이 많이 섞여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 오오쿠에는 정실과 측실뿐 아니라 수많은 여성들이 계급에 따라 조직되어 있었고, 그중에는 오오쿠 전체의 운영을 책임질 정도로 강한 권한을 가진 오토시요리(御年寄)도 있었습니다. 도쿄국립박물관은 오토시요리를 오오쿠의 운영 전반을 담당하며 때로는 막부의 중추와도 맞설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직책으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오오쿠가 보여주는 세계를 단순히 여자 쇼군과 남자 후궁의 이야기라고만 보면 작품의 재미를 상당 부분 놓치게 됩니다.
오오쿠의 비밀은 제도로도 지켜졌습니다. 국립공문서관에는 훗날 군의총감이 되는 마쓰모토 료준이 1864년에 제출한 혈판 서약서가 남아 있습니다. 오쿠이시(奥医師, 쇼군 가문의 여성들을 진료하는 의사)에 임명된 그는 약을 올릴 때 동료 의사들과 상의해 최선의 처방을 따르겠다는 것, 그리고 오쿠 안의 일은 부모형제와 처자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는 것들을 서약했습니다. 쇼군의 잠자리 시중을 돕던 오토기보즈(御伽坊主) 역시 대부분 퇴직한 뒤에도 오오쿠의 내부를 바깥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오오쿠에 있던 사람들
오오쿠를 관리하던 사람이 모두 여성인 것은 아닙니다. 앞서 본 히로시키 관리들은 오오쿠의 운영을 위해 근무한 남성들이고, 오쿠이시는 쇼군 이하 오쿠의 사람들을 진료하고 오오쿠에서 태어난 쇼군의 자녀를 진찰하는 남성 의사였습니다. 반대로 오토기보즈는 오오쿠 소속의 여성이면서도 쇼군의 일상 공간인 나카오쿠(中奥)까지 드나들 수 있었던 특이한 존재였습니다. 공문서관이 소개하는 『여중장』에는 70세에 퇴직을 청한 사람, '봉공 50여 년'으로 적힌 사람이 있어, 나이 지긋한 여성들이 맡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직책도 다양했습니다. 최고위의 조로오토시요리, 앞서 언급한 오오쿠의 실력자 오토시요리, 쇼군과 정실부인의 신변을 돌보는 오추로, 외부와의 연락을 맡은 오모테즈카이, 잡무를 맡은 오하시타까지 이어지는 위계가 있었습니다.

후계자를 위한 공간
작품과 실제가 함께 다루는 또 하나의 유사점은 후계자입니다. 오오쿠의 중요한 역할은 쇼군의 정실과 함께 세자를 양육해 도쿠가와 가문의 존속을 도모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오오쿠에는 출산과 육아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따로 존재했습니다. 국립공문서관에는 산파 역할을 담당한 사람, 갓난아이에게 처음 젖을 먹이는 사람, 쇼군의 어린 자녀에게 젖을 먹이는 사람 등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직책이 오토기보즈입니다. 이들은 머리를 깎고 승려처럼 보이는 나이 든 여성들이었는데,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가 쇼군의 후사를 잇는 일을 보좌하는 것이었습니다. 쇼군과 측실의 만남을 연결하고, 쇼군이 오오쿠의 침실에서 측실과 함께 있을 때 다음 방에서 상황을 지켜본 뒤 오토시요리에게 보고했다고 합니다.
작품 오오쿠에서 쇼군의 사생활이 개인적인 연애만으로 끝나지 않고 오오쿠 전체의 규칙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실제 역사에서도 쇼군의 후계자를 만드는 일은 상당히 조직적인 관리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오오쿠의 기틀을 닦은 인물로 꼽히는 가스가노쓰보네는 3대 쇼군 이에미쓰의 유모로, 도쿠가와 직계가 쇼군 자리를 잇도록 힘썼습니다. 이 인물은 애니메이션 오오쿠에도 등장해 이에미쓰의 후사 문제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성별은 뒤집혔어도 피를 이을 사람이 필요하다는 압력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정치 무대
애니메이션 오오쿠의 매력은 단순한 남녀 성별 반전에 그치지 않습니다. 작품은 실제로 존재했던 에도성 깊숙한 공간의 위계, 후계자 계승 제도, 그리고 사생활과 권력이 얽힌 통치 구조를 고스란히 복원한 채 성별이라는 축만 비틀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사료로 들여다본 실제 오오쿠 역시 흔히 떠올리는 쇼군의 후궁이라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엄격한 직책 체계와 외부 통제, 후사 관리에 이르기까지, 오오쿠는 쇼군에게 가장 가까운 이들이 가장 철저한 제도 아래 머물던 또 하나의 정치 무대였습니다. 작품이 구축한 대체역사의 깊이는 바로 이처럼 치밀했던 실제 오오쿠의 역사적 무게감에서 비롯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