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쩔수가없다'의 불란서주택, 70년대 중산층의 로망이 담긴 집

영화 '어쩔수가없다' 속 만수의 집은 70년대 유행한 '불란서주택'이라는 양식의 주택이다. 프랑스와 무관한 이 집의 정체와 중산층의 로망이 투영된 의미를 탐구한다.

에디터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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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쩔수가없다' 속 만수의 주택을 처음 보았을 때는 배경이 과거 미국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필름으로 찍은 듯한 색감 때문에 더더욱 2000년 이전의 미국의 소도시 주택과도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야외 바비큐가 가능하고 대형견 두 마리가 뛰놀 수 있는 넓은 마당, 고풍스러운 벽돌 기둥과 잣나무 숲이 보이는 커다란 통창을 가진 이층 침실은 여느 한국의 집과 다른 풍경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주요 배경이기도 한 이 주택은 충남 아산 도고면에 위치한 느랭이 마을의 실제 주택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만수와 미리의 집을 하나의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고 얘기하면서 이 집이 70년대 이른바 '불란서주택'이라는 양식의 집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이 불란서 주택에 관해 알아보려 합니다.

프랑스와 관련 없는 불란서주택(佛蘭西住宅)

불란서주택은 1970년대 한국 도시(특히 서울)에서 유행한 2층 단독주택 양식을 가리키는 속칭입니다. 정식 건축 용어가 아니라 당시 통용되던 별칭이며, 지금은 사라진 표현으로 그냥 '단독주택'이라 불립니다. 불란서는 외래어인 프랑스(France)를 한자의 음(소리)을 빌려 표기하는 '음역(音譯)' 또는 '가차(假借)' 방식으로 적은 명칭입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름과 실체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불란서주택은 사실은 실제 프랑스와는 무관합니다. 삼각지붕을 가진 2층 양옥집의 특징이 핵심인 이런 집을 불란서 주택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당시 건설업자들의 브랜드 전략이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유럽풍 이미지를 파는 일종의 마케팅용어인 셈이지요.

다만 건축사학자 서윤영의 저서에 따르면, 19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인도차이나 반도 등에서 유행하던 식민지 주택 양식이 한국에 상륙해 불란서주택으로 불렸다고 추정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실제 프랑스 본토 건축과는 무관하고, 서구와 한국의 절충식 양식이라는 것은 동일합니다.

암사동 양지마을1979년 암사동 양지마을(1979), 출처: 서울특별시 문화공보관 / 서울기록원

중산층의 로망

박찬욱 감독은 이 불란서주택에 대해 당시에는 천박한 취향이라며 건축가들에게는 외면받았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런 주택 양식은 대부분 영세 건설업자(집장수집)에 의해 집단적으로 건설됨으로써 유명 건축가가 아닌 소규모 시공업자들이 표준화된 도면으로 대량 건설한 것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불란서주택은 그 시대 중산층의 로망이 담긴 집입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폭발적 경제성장 과정에서 중산층이 등장하였고, 대규모 주택공급에 있어서 그 당시 아파트에 비해 선호도가 높은 단독주택을 대거 공급하였습니다. 서민용 주택이라는 인상을 주었던 아파트에 '맨션'이라는 이름을 붙여 세련된 중산층용 주택이라는 인상을 갖도록 하였듯 경제적 형편이 나아진 단독주택 수요층을 상대로 민간 건설업체는 '불란서'라는 이름을 덧붙여 꿈에 그린 집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했습니다.

불란서주택의 내부는 영화 속 만수 집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발코니, 테라스가 있고 침실과 거실, 입식 부엌이 들어섰습니다. 좌식이 아닌 입식 생활과 실내화장실 등 70년대 당시로서는 근대적 편의 요소를 갖춘 주택이었습니다.

이러한 양식은 서울뿐 아니라 지방 소도시에도 퍼져, 농촌의 새마을주택 역시 불란서주택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어, 도시와 농촌을 아우르는 시대적 유행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란서주택은 당시 부유한 도시 생활과 서구식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중산층의 로망이 고스란히 투영된 상징적인 공간인 것입니다.

과거의 영광에 갇힌 집

영화 '어쩔수가없다' 속의 만수는 실직한 상황에서도 집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합니다. 과거 만수의 아버지가 큰 규모의 돼지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대사로 미루어 만수는 어릴 적 꽤 부유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에도 이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집을 되찾는 것이 큰 의미였는데, 다시 경제적 이유로 집을 잃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주택은 단순한 주거의 공간을 넘어 아버지로서 가족을 꿈의 집에서 지내게 해야 한다는 강렬한 집착과 의무감, 지독한 허영과 헛된 수고로움이 뒤섞인 곳입니다. 50년이 넘은 집, 흔히 보기 어려운 온실까지 마당에 갖추고, 그 안에서 분재를 취미로 하는 만수의 집안 곳곳은 과거의 산물이 그득합니다. 만수의 직업이 제지맨으로 설정된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재개발로 이러한 주택들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내려놓지 못하는 만수의 집착과 욕망 속에서 서양식 껍데기와 한국의 치열한 현실이 묘하게 뒤섞인 불란서 주택은 주인공이 겪는 씁쓸하고 기묘한 비극을 대변하는 무대입니다.

인용 출처

  1. SR타임스: 영화 어쩔수가없다 촬영지
  2.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불란서주택
  3. 제주평화연구원 아카이브: 불란서주택
  4. 서윤영, 『꿈의 집, 현실의 집』

Film어쩔수가없다 (2025)

(No Other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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