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개요
영화 한 남자는 변호사 키도가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살았던 한 남자를 추적하며 일어나는 일들을 다룹니다.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신분을 감추거나 바꾸고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등장인물이 당신은 누구인지 또 나는 누구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습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금지된 재현>은 이러한 혼란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장치입니다.
금지된 재현: 거울 속의 또 다른 나

위 작품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금지된 재현(La reproduction interdite,1937)입니다. 거울 속의 사람은 물리 법칙과 어긋난 상태의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즉 거울 밖의 사람이 거울을 바라보고 있지만 거울 속의 사람은 얼굴을 보이지 않고 그대로 뒤통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반면 거울 앞에 놓인 책은 정상적으로 반전되어 그려져 있지요.
이처럼 상식에 벗어난 이 시각적 뒤틀림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묘하고 불편한 감정을 들게 만듭니다. 이 그림 속 인물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X를 찾는 변호사 키도의 마지막 모습과 오버랩되는데요, 그림을 아무리 똑같이 그려도 복사한 것처럼 재현할 수 없듯이 나의 내면과 나를 보는 시각은 결코 같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물과 다르게 복잡한 인간의 내면은 누구도 자로 잰듯이 똑같이 알아보거나 꺼내볼 수 없다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지워지지 않는 낙인
일본 법무성은 특정 국가 출신자이거나 그 자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 사회에서 몰아내려 하거나 위해를 가하겠다는 식의 일방적인 언동을 '헤이트스피치'로 규정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오래된 집단주의와 혈통과 소속을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이른바 출신성분에 의한 차별과 억압이 이어왔던 배경에 기인합니다. 재일교포-자이니치에 대한 차별은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의한 공식 보고서가 존재하기도 합니다.
변호사 키도는 재일교포3세입니다. X의 진짜 신분을 찾기 위해 조사차 만난 사기꾼에게서조차 "당신 3세지"라는 조소어린 말을 듣는 것도 모자라 장인은 사위 앞에서 대놓고 일본 내 극우 시위를 옹호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습니다. 키도는 뭐라 반박하지 않습니다. 일본 사회에서 출신의 꼬리표가 얼마나 떼기 어려운지 보여주는 장면으로 보였습니다.
X는 살인자의 아들입니다. 일본에서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강하게 경계하는 '메이와쿠(迷惑)' 문화가 사회 전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집단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범죄자의 가족까지 사회적 낙인을 경험하는 사례가 꾸준히 지적되어 왔습니다.
공식적으로 연좌제는 없지만 가혹하리만치 이들을 멀리하고 철저히 소외시키고, 넷린치라는 사회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X는 어린아이에 불과했습니다만 이 꼬리표는 나이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나를 범죄자의 아들로 보지 않고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름을 버리고, 나를 모르는 곳에서 사는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름 뒤에 숨은 자화상
사회적으로 인식되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숙명과도 같은 나의 출신을 극복하기란 어렵습니다. 범죄자의 가족, 재일교포라는 두 인물 외에도 X의 가짜 신분의 진짜 주인 또한 평범하고 윤택한 삶을 버리고 이름을 교환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어느 온천의 아들이라고 알아차릴 그런 이름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씌워진 굴레를 벗어나 진짜 내가 누구인지 나를 찾는 여정을 시작한 사람들을 막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을 것입니다.
다시 쓰는 인생의 이면
아마 변호사 키도는 본인의 직업과 이름을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냉소와 차별을 감추지 않는 장인이지만 그 집안의 후광은 부와 권력으로 키도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니까요. 하지만 나의 이름을 모르는 어느 작은 술집에서 만큼은 거짓 이름 혹은 내가 바라는 이름과 삶을 마치 진짜 인생인 것마냥 읊조릴 수 있습니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내가 만들어내는 삶은 결코 지금과 같지 않고 똑같이 재현할 수도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