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100 ~좀비가 되기 전에 하고 싶은 100가지~』의 주인공 텐도 아키라는 악덕 기업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 있던 입사 3년 차 회사원입니다. 어느 날 아침, 거리에 좀비 팬데믹이 발생하고, 그 순간 아키라가 느낀 것은 공포가 아니라 해방감이었습니다. 이제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100가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흥미로운 건 좀비 자체가 아닙니다. 좀비 사태가 재난이 아니라 해방으로 그려지는 순간, 그 전까지 아키라가 다니던 회사가 어떤 곳이었는지가 잘 드러납니다. 작중에서 이 회사를 가리키는 말은 하나입니다. 악덕 기업, 이른바 '블랙기업'.
블랙기업은 무엇일까요? 이 말은 애니메이션에서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일본에서 블랙기업은 이미 오래전부터 쓰여 온 말이고, 역사를 따라가 보면 아키라 같은 인물이 왜 좀비 사태를 오히려 반가워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麻生羽呂・高田康太郎・小学館/「ゾン100」製作委員会
블랙기업, 은어에서 대중화까지
블랙기업(ブラック企業)이라는 말은 원래 폭력단 등 반사회적 세력과 연관된 불법 기업을 가리키던 은어였습니다. 이 말이 지금의 뜻, 즉 노동 환경이 가혹한 회사라는 의미로 진화된 것은 2000년경, 일본의 대형 익명 게시판 2채널(2ちゃんねる)에서였습니다. 취업준비생들이 이른바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는 회사 목록"을 공유하며 이 말을 쓰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철야와 야근이 잦은 IT 업계 프로그래머들의 자조적인 은어에 가까웠습니다.
이 은어가 대중적으로 각인된 계기는 2007년, 같은 게시판에 올라온 글 「블랙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이제 나는 한계인지도 몰라(ブラック会社に勤めてるんだが、もう俺は限界かもしれない)」였습니다. 취업 이력이 거의 없던 한 청년이 어렵게 들어간 IT 회사에서 겪은 가혹한 노동 환경을 담은 이 글은 2008년 책으로 출간되고, 2009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인터넷 은어였던 블랙기업이 하나의 서사를 갖춘 대중적 개념으로 자리잡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2013년, 블랙기업은 그해의 유캔 신어·유행어 대상 톱10에 올랐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의 자조적 농담으로 시작된 말이, 6년 만에 한 해를 대표하는 사회적 언어로 공인된 셈입니다.
정부가 정의하는 블랙기업
이 신어는 유행처럼 번져 사회적으로도 반향을 일으켰고, 2012년에는 NGO와 변호사, 언론인들이 모여 그해 가장 노동 착취가 심했던 기업을 뽑는 '블랙기업 대상(ブラック企業大賞)'을 제정하기에 이릅니다. 매년 발표되는 이 상의 선정 기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과로사 인정 여부, 미지급 잔업 수당의 규모, 산업재해 인정 건수처럼 노동 당국이 실제로 인정한 사건들이 그 근거가 됩니다.
일본 후생노동성조차 이 문제를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후생노동성 산하 '확인하자, 노동조건' 사이트는 "블랙기업이라 불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정부는 블랙기업을 공식 용어로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인 특징으로
① 노동자에게 극단적인 장시간 노동이나 과도한 목표치를 부과하고
② 임금 미지급 잔업이나 직장 내 괴롭힘(パワーハラスメント, 파워하라스먼트)이 만연할 만큼 기업 전체의 준법 의식이 낮으며
③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를 소모품처럼 다루며 높은 이직률(퇴사율)을 유발하는 경우를 든다고 명시합니다.
정부 기관이 인터넷 은어의 정의를 공식 문서에 인용해야 할 정도로, 이 말은 이미 행정의 영역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이 목록에 반복해서 이름을 올린 기업 중에는, 신입사원의 과로자살 사건으로 결국 블랙기업 대상 2016의 대상을 수상한 광고 대행사 덴츠도 있었습니다. 이 회사에서는 1991년과 2015년, 24년의 간격을 두고 똑같은 방식의 죽음이 두 차례 산업재해로 인정되었습니다. 흔히 '덴츠 1차 사건', '덴츠 2차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례들은, 블랙기업이라는 말이 은유가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죽어 나감을 보여준 여러 사례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Nesnad, CC BY-SA 4.0
과로사(過労死) —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오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끝에 발음 그대로 국경을 넘어 자리잡은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일하다가 죽는다는 뜻의 '가로시(過労死)' 즉 과로사입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에 따르면 명사 karoshi는 2001년 12월 처음 등재되었고, 가장 오래된 용례는 1988년 시카고 트리뷴 기사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전은 이 단어를 일본어 karō-shi에서 온 차용어로 분류하며, 영국식과 미국식 발음 모두 "kuh-ROH-shee"로 일본어 발음을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이렇게 외국어가 번역되지 못하고 발음째 다른 언어에 편입될 때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응할 개념이 그 언어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어권이 '일하다 죽는다'는 현상을 표현하기 위해 굳이 일본어를 그대로 빌려와야 했다는 사실은, 은어에서 유행어로, 유행어에서 정부 문서의 용어로, 그리고 마침내 외국어 사전의 표제어로 이어진 이 모든 흐름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키라가 좀비 사태 앞에서 공포 대신 해방감을 느꼈던 것은 그저 만화적인 상상력이 아닙니다. 회사에서 며칠씩 집에 가지 못하고 씻지도 못한 채 정신이 붕괴되어 점점 좀비처럼 변해가는 아키라에게는 죽기보다 더 두려운 것이 출근입니다. 회색빛으로 그려진 그의 일상이 좀비 사태가 터지면서 오히려 총천연색으로 변해 세상이 다채로워집니다. 그렇게 철야로 인해 쓰레기 버릴 시간조차 없어 더러워진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해가며 콧노래를 부르고, 버킷리스트를 적어나가며 생기 있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아이러니를 풍자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살아있지 않았던 직장인 아키라가 적어 내려간 버킷리스트가 좀비 세상에서만큼은 모두 이루어지길 바랍니다.